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과의 미래가 불행하다는 걸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랜만에 드라마를 정주행 했습니다. 평소엔 영화만 보는 편인데, 《키스식스센스》는 첫 화를 틀었다가 결국 끝까지 봐버렸습니다. 키스를 하면 상대방의 미래가 보이는 여자 홍예술과, 키스를 하면 감각 과부하로 몸이 망가지는 남자 차민우의 이야기입니다. 설정 자체가 독특해서 기대했지만, 중반 이후 능력 설정의 일관성 문제와 후반부 급격한 장르 전환이 아쉬웠습니다.
홍예술의 미래 예지 능력, 규칙이 흔들리는 순간
홍예술이 가진 능력은 타인의 신체에 입술이 닿으면 그 사람의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래 예지'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보는 초능력을 의미하며, 드라마 초반에는 "내가 본 미래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절대 규칙으로 제시됩니다. 이 설정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미래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회피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저도 살면서 "이 사람이랑 잘못 엮이면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그 감각이요. 그런데 홍예술은 그게 그냥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보입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 미래가 무서워서 결과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 이 지점에서 저는 꽤 공감했습니다.
문제는 중반 이후부터입니다. 어떤 미래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어떤 건 틀리고, 어떤 건 본인도 헷갈려합니다. 예를 들어 홍예술이 본 미래 중 일부는 실현되지 않거나, 타이밍이 달라지거나, 해석이 바뀝니다. 이게 극의 핵심 설정인데 일관성이 없으니까 시청자 입장에서 "이 미래가 실현될까?" 하고 조마조마해야 할 순간에 그냥 "뭐 어떻게 되겠지"로 넘어가게 됩니다. 긴장감이 쌓이질 않는 거죠.
능력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룰의 명확함'입니다 시청자가 능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몰입이 생깁니다. 그런데 《키스식스센스》는 그 룰을 중반부터 스스로 무너뜨립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차민우의 감각 과부하, 캐릭터의 결이 달라지는 과정
차민우는 키스를 하면 '감각 과부하(Sensory Overload)'라는 증상을 겪습니다. 여기서 감각 과부하란 오감이 남들보다 몇 배 이상 예민해져, 특정 자극에 노출되면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이를 13살 때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설정했고, 홍예술과 함께 있을 때만 증상이 완화된다는 설정을 더했습니다.
초반 차민우는 냉정하고 날카로운 직장 상사였습니다. 윤계상 배우가 보여준 서늘한 카리스ma는 확실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도 표현하는 순간 본인이 다치는 구조. 이게 꼭 연애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를 진심으로 원할수록 더 조심하게 되고, 더 숨기게 되는 그 감각. 직장에서도 그렇고, 관계에서도 그렇고요.
그런데 중반 넘어서면서 차민우는 갑자기 엉뚱하고 귀여운 남자로 변합니다. 윤계상 배우가 소화는 하는데, 캐릭터 자체의 결이 앞뒤로 안 맞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 보여줬던 그 서늘한 분위기는 중반 이후 거의 사라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반 차민우가 더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장면은 진짜 좋았습니다. 저도 이상한 비밀이 있어서 말을 못 했는데, 막상 말했더니 상대방도 비슷한 걸 갖고 있었다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그 기억이랑 겹치면서 괜히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전개는 점점 산만해집니다.
후반부 범죄 스릴러 전환, 로코의 정체성을 흔들다
《키스식스센스》의 가장 큰 문제는 후반부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로 달리다가 갑자기 스토커 범죄자 등장, 아버지 살인 사건, 어린 시절 기억 상실까지 쏟아집니다. 이게 딱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데, 중반까지 잘 가다가 후반에 무거운 떡밥을 한꺼번에 투하하는 겁니다.
로코를 보러 들어왔는데 갑자기 범죄 스릴러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분위기 전환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몰입이 뚝 끊겼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부분에서 시청 속도를 올렸습니다. 빨리 넘기고 싶더라고요.
후반부 전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홍예술 엄마의 전남편이 스토커 범죄자로 등장
- 홍예술 아버지 살인 사건이 과거 회상으로 재등장
- 어린 시절 차민우와 홍예술이 같은 사건을 목격했다는 설정 추가
이 모든 게 마지막 2~3회에 몰아서 나옵니다. 개연성을 쌓을 시간도 없이 급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드라마 전체 톤이 흔들리면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정체성도 약해졌습니다.
국내 드라마 시청 데이터에 따르면, 시청자들은 장르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로코는 로코답게, 스릴러는 스릴러답게 가야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키스식스센스》는 이 경계를 넘나들다가 양쪽 모두에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윤계상과 서지혜의 케미는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배우가 불안정한 스크립트를 어느 정도 붙잡아주는 편입니다. 초반 직장 상사와 부하 관계에서의 티격태격 장면들, 차민우가 홍예술한테 은근히 챙겨주면서도 차갑게 구는 장면들은 꽤 재밌고 설렙니다. 가볍게 켜놓고 보는 로코로는 추천할 만합니다. 다만 능력 설정에 진지하게 몰입하려 했다면 중후반에서 분명히 실망하는 구간이 올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봤다는 건,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이 꽤 실감 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