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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펜은 흥행보다 강하다: 영화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리뷰들

by 머니윙 2025. 11. 1.

관객 평점과 박스오피스 순위가 영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 '영화 비평'은 때로 시대에 뒤처진 소수의 엘리트주의적 목소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비평가의 날카로운 펜 끝에서 한 편의 영화, 나아가 한 감독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결정적인 순간들이 존재한다. 비평은 단순히 별점을 매기는 행위를 넘어, 잊힐 뻔한 작품을 발굴하고, 작은 영화에 날개를 달아주며, 때로는 거대 자본의 실패를 선고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본 글에서는 영화 비평이 어떻게 흥행 성적이라는 표면적 가치를 넘어 작품의 역사적, 예술적 운명을 재창조했는지, 그 결정적 사례들을 통해 비평의 진정한 역할을 탐구하고자 한다.

'Masterpiece'라고 적힌 영화 평론이 타자기에 끼워진 이미지

1. 비평의 역할 ①: 발굴자 - 시간 속에 묻힌 걸작을 부활시키다

가장 위대한 비평의 역할은 당대의 편견과 몰이해 속에 묻힌 작품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후대에 전달하는 '발굴자'의 역할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는 이러한 역할의 가장 대표적인 수혜자다. 개봉 당시, 영화는 어둡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흥행에 참패했다. 하지만 소수의 비평가 그룹과 영화학자들은 이 영화가 제시한 '사이버펑크'의 미학적 성취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꾸준한 재해석과 담론 형성은 '블레이드 러너'를 단순한 실패작이 아닌, 반드시 봐야 할 '컬트 클래식'으로 격상시켰다. 결국 시간은 비평가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제 '블레이드 러너'는 SF 영화사를 넘어 80년대 시네마를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 비평의 역할 ②: 킹메이커 - 작은 영화에 세계적인 날개를 달다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쏟아지는 비평적 찬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영화를 전 세계적인 무대로 이끄는 '킹메이커' 역할을 수행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의 신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그 직후 쏟아진 전 세계 비평가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초기만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후보 정도로 거론되던 이 영화는, "올해 최고의 영화", "계급 문제를 다룬 가장 완벽한 스릴러" 등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점차 작품상 후보, 나아가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부상했다. 비평가들이 형성한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할 시대의 걸작"이라는 강력한 여론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표심을 움직여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낸 결정적인 동력이었다.

3. 비평의 역할 ③: 수호자 - 감독의 예술적 비전을 옹호하다

때로는 비평이 대중의 몰이해나 제작사의 간섭으로부터 감독의 예술적 비전을 지켜내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가 개봉했을 때, 많은 관객과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주인공을 영화 중반에 살해하는 파격적인 구조와 폭력성에 충격을 받고 저급한 영화라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의 젊은 비평가 그룹이었던 '카이에 뒤 시네마'(프랑수아 트뤼포, 장뤽 고다르 등)는 달랐다. 그들은 히치콕을 단순한 서스펜스 장인이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가진 위대한 '작가(Auteur)'로 규정하고, '싸이코'의 모든 장면과 카메라 워크에 담긴 천재적인 영화 언어를 분석해 냈다. 이들의 지적인 옹호는 '싸이코'를 단순한 공포 영화를 넘어 현대 스릴러의 문법을 정립한 예술 작품으로 재평가받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4. 비평의 역할 ④: 파괴자 - 거대 자본의 실패를 선고하다

비평의 힘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혹평은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마저 침몰시키는 '파괴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톰 후퍼 감독의 뮤지컬 영화 '캣츠'(2019)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영화가 공개된 후, 전 세계 비평가들은 일제히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유발하는 끔찍한 CG와 개연성 없는 스토리에 대해 조롱에 가까운 혹평을 쏟아냈다. "재앙적인 실패", "악몽 그 자체"와 같은 신랄한 리뷰들은 단순한 평가를 넘어 하나의 '밈(Meme)'처럼 퍼져나갔고, 잠재적인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에서 완전히 돌려놓았다. 결국 '캣츠'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실패작이 되었고, 이는 비평적 참사가 어떻게 상업적 재앙으로 직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의 가장 강력한 사례로 남았다.

 

 

결론적으로, 영화 비평은 단순히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나누는 행위를 넘어, 작품의 가치를 정의하고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중요한 문화적 활동이다. 흥행 성적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잊힐 수 있지만, 깊이 있는 비평을 통해 얻어진 예술적 성취는 시간을 이겨내고 영원히 기록된다. 비평가의 펜 끝에서, 영화는 비로소 단순한 오락거리에서 불멸의 예술로 거듭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