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감독의 이름은 때로 하나의 장르가 된다. 우리는 히치콕의 영화에서 '히치 콕 적인' 서스펜스를,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타란티노적인' 수다와 폭력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봉준호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카데미를 석권한 '기생충'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 이르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특정 장르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화 언어를 구축해 왔다. 본 글에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주제와 스타일, 즉 '봉준호 장르'를 구축하는 4가지 핵심적인 키워드를 통해 그의 경이로운 세계를 탐험하고자 한다.

키워드 1: 공간의 문법 - 계단, 수직, 그리고 계급
봉준호의 영화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강력한 언어다. 특히 그는 **'수직적 공간'을 통해 계급의 차이를 시각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기생충'에서 기택의 반지하 집과 박사장의 언덕 위 저택은 결코 좁힐 수 없는 계급의 높이를 상징하며, 두 공간을 잇는 수많은 '계단'은 상승과 하강의 욕망과 비극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설국열차'에서도 마찬가지다. 꼬리칸에서 엔진칸으로 향하는 기차의 수평적 구조는 사실상 계급의 수직적 서열을 의미한다. 심지어 '괴물'에서조차, 평범한 가족이 사는 강변과 그들을 통제하려는 정부 관료들이 있는 높은 단상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높낮이를 드러낸다. 그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언제나 더 높은 곳을 갈망하거나, 낮은 곳으로 추락한다.
키워드 2: 장르의 변주 - 예측을 배반하는 리듬감
봉준호의 영화를 단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장르의 관습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며,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장르를 변주하고 충돌시킨다. **'살인의 추억'**은 섬뜩한 연쇄살인 스릴러지만, 동시에 80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담은 블랙코미디이자, 무력한 시골 형사들의 버디물이기도 하다. '괴물'** 역시, 끔찍한 크리처 호러인 동시에 눈물 나는 가족 드라마이며, 무능한 정부를 풍자하는 사회 코미디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웃음과 갑작스럽게 엄습하는 비극의 교차는 관객의 예상을 배반하며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봉준호 장르'의 핵심적인 매력이다.
키워드 3: 무능한 시스템 - 어리석은 권력에 대한 냉소
봉준호의 세계에서 진짜 괴물은 기이한 생명체나 악당이 아니라, 종종 무능하고 부조리한 '시스템' 그 자체다. 그의 영화 속 경찰, 정부, 기업, 언론 등 거대 권력 집단은 언제나 개인의 비극 앞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살인의 추억'의 주먹구구식 수사를 하는 경찰, '괴물'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엉터리 발표를 하는 정부, '옥자'에서 생명을 상품으로만 여기는 탐욕스러운 거대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그 예다. 봉준호는 이러한 시스템의 무능함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결국 평범한 개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 싸우도록 만든다.
키워드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 기이하고 서글픈 연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봉준호가 제시하는 유일한 희망 혹은 대안은 바로 '가족(혹은 유사 가족)'이라는 기이하고 서글픈 연대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 가족은 일반적인 가족 드라마처럼 끈끈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괴물'의 가족은 어딘가 모자라고 콩가루 같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 무능한 국가를 대신해 직접 괴물과 맞서 싸운다. '기생충'의 가족은 완전범죄를 꿈꾸는 사기꾼 집단이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끔찍이 아낀다. '마더'의 엄마는 아들을 위해 괴물이 되는 것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 가족은 사회 시스템 밖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단위이자, 가장 원초적인 사랑과 이기심이 공존하는 복잡한 집단으로 그려진다.
결론적으로 '봉준호 장르'는 사회의 계급적 구조를 날카롭게 응시하고(수직의 공간),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장르의 변주), 시스템의 무능함을 조롱하고(어리석은 권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가족 공동체를 통해 희망을 모색하는(서글픈 연대) 영화적 세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키워드를 나침반 삼아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본다면, 당신은 비로소 봉준호라는 거장이 설계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경이로운 세계의 진짜 지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