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마녀》를 보는 내내 미정의 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강풀 원작 특유의 감성으로 '저주'를 데이터와 통계로 증명하려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랑을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설정이 신선하면서도, 그 안에 진심이 느껴져서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법칙을 찾아내는 과정, 그 안의 진심
동진이 미정 주변에서 일어난 사고들을 추적하며 패턴을 찾아내는 과정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10m 이내 거리, 10분 이상 대화, 열 마디 이상 대화, 본명 인지 여부 등 구체적인 조건들을 하나씩 검증해 나가는 방식은 마치 역학 조사(epidemiological investigation)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역학 조사란 특정 질병이나 현상의 발생 원인과 전파 경로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공중보건학의 연구 방법을 의미합니다.
저도 과거에 주변 사람들이 연달아 힘든 일을 겪었을 때, 혹시 제가 어떤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자책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는 우연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연결고리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동진이 직접 배달원으로 일하며 시간과 거리를 재고, 심지어 한강에 뛰어드는 장면까지 보면서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진짜 사랑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드라마에서 통계적 유의성(statistical significance)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어떤 현상이 우연이 아닌 실제 연관성을 가질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동진은 이 개념을 활용해 미정 주변의 사고가 단순한 우연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려 했습니다. 그의 접근 방식은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저주'를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였고, 그 과정 자체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저주의 무게와 미정의 수동성
미정이 겪은 고통은 충분히 전달됩니다. 학교에서 마녀로 낙인찍히고, 마을 회의로 쫓겨나고, 스스로를 옥탑방에 가두고 사는 삶.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미정이 너무 오래 피해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진이 모든 것을 조사하고, 검증하고, 법칙을 찾아내는 동안 미정은 거의 객체로만 존재합니다.
후반부에 미정이 동진의 블로그를 읽고 직접 데이터를 재분석해서 새로운 변수(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은 안전하다는 사실)를 찾아내는 장면이 있는데, 솔직히 이 장면이 너무 늦게 나왔습니다. 드라마 초반부터 미정이 자신의 저주를 능동적으로 파헤치는 구조였다면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가 됐을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자기 문제를 직접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가 치유의 시작인데, 미정에게 그 기회가 너무 적게 주어진 게 아쉬웠습니다.
또 하나 걸리는 건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에 대한 책임 추궁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다은이 밤에 찾아와서 "내가 소문 처음 만들었어, 미안해"라고 한마디 하고 끝납니다. 근거 없는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십수 년을 망가뜨렸는데, 그 무게가 드라마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동진 엄마가 앞장서서 미정을 쫓아낸 것도 집을 사뒀다는 것으로 무마되고, 마을 사람들의 집단 괴롭힘도 그냥 넘어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 부르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개인의 책임감이 분산되어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드라마는 이 집단적 폭력의 구조를 보여주면서도, 정작 그 책임을 묻는 데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 그리고 남은 질문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든 건 동진이라는 캐릭터였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사람.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접근하면서도, 그 안에 진심이 있다는 게 계속 느껴졌습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ata-driven decision making)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직관이나 경험이 아닌 객관적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동진은 사랑조차 데이터로 증명하려 했고, 그게 오히려 더 낭만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중혁과 은실의 로맨스는 같은 저주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난다는 설정은 좋았는데, 감정이 쌓이는 과정이 너무 압축됐습니다. 중혁이 은실에게 직진하는 장면이 갑작스럽게 느껴진 건 그래서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천천히 보여줬다면 설득력이 높아졌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돈 질문이 있었습니다. 만약 미정이 자기 저주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안전하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동진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저는 아직도 그 답을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그 사람 곁에 있는 걸 선택하는 거라는 점입니다.
《마녀》는 완벽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사랑을 증명하려는 한 사람의 진심만큼은 확실히 전달되는 작품입니다. 미정의 능동성 부족과 가해자 처리의 아쉬움은 남지만, 동진의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혹시 주변 사람 때문에 자책하며 스스로를 가두고 계신가요? 이 드라마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