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는 수많은 거장들의 이름으로 기록되지만, 때로는 단 한 편의 영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홀연히 사라진 비운의 천재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라 불리며,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압도적인 역량으로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이상 우리에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은 영화 팬들에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자 영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본 글에서는 영화사에 단 하나의 마스터피스를 남기고 사라진 '원 히트 원더' 감독들의 경이로운 데뷔작과 그들이 스크린 뒤로 사라진 배경을 추적하며, 꺼져버린 재능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한다.

1. 찰스 로튼 (Charles Laughton) - '사냥꾼의 밤' (1955)
배우로서 이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거장이었던 찰스 로튼. 그가 연출한 유일한 영화 '사냥꾼의 밤'은 당대에는 처참한 흥행 실패와 혹평을 겪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적인 미장센과 시대를 앞서간 영상미로 재평가받으며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작 중 하나로 꼽힌다.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와 탐욕스러운 어른의 악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흑백의 미학, 특히 로버트 미첨이 연기한 설교자 '해리 포웰'의 양손에 새겨진 'LOVE'와 'HATE' 문신은 영화사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개봉 당시의 상업적 실패와 평단의 냉혹한 반응에 깊은 상처를 받은 로튼은 다시는 메가폰을 잡지 않았고, 배우로서의 삶에만 전념했다. 그의 침묵으로 인해 영화계는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사하는 위대한 감독 한 명을 영원히 잃게 되었다.
2. 레오스 카락스 (Leos Carax) - 프랑스 영화계의 이단아
엄밀히 말해 레오스 카락스는 단 한 편만 만든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활동은 극도로 과작으로 유명하며, 특히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로 이어지는 초기 3부작 이후 기나긴 침묵을 가졌다. 1999년 '폴라 X' 이후 무려 13년 만에 내놓은 '홀리 모터스'(2012)는 그가 왜 '천재'이자 '이단아'로 불리는지를 증명한 작품이었다. 한 남자가 하루 동안 리무진을 타고 파리 시내를 돌며 아홉 개의 다른 인격으로 변신한다는 이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가',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평단의 절대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긴 침묵에 들어갔고, 9년이 흐른 2021년에야 '아네트'를 발표했다. 제작 과정의 어려움과 타협을 거부하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에 대한 집착은 그를 전설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더 자주 만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3. 토니 케이 (Tony Kaye) - 제작사와의 전쟁으로 스러진 재능
CF 감독 출신인 토니 케이의 데뷔작 '아메리칸 히스토리 X'(1998)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강렬하고 충격적인 걸작이다. 백인 우월주의자였던 한 청년의 변화를 통해 증오의 연쇄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특히 에드워드 노튼의 신들린 연기와 감각적인 흑백/컬러 교차 편집으로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의 최종 편집권을 두고 제작사와 벌인 끔찍한 갈등은 그의 경력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자신의 편집본을 지키기 위해 그는 신문에 제작사를 비난하는 광고를 싣고, 심지어 감독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며 '앨런 스미시'라는 가명을 요구하는 소송까지 벌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할리우드의 문제아로 낙인찍혔고, 이후 몇 편의 저예산 영화를 연출했지만 데뷔작이 보여준 재능과 명성을 결코 되찾지 못했다.
4. 리처드 켈리 (Richard Kelly) - 너무 빨리 도착한 미래
26살의 리처드 켈리가 연출한 데뷔작 '도니 다코'(2001)는 개봉 당시에는 소수의 지지만을 받은 채 쓸쓸히 사라졌지만, DVD 시장에서 입소문을 타며 시대를 초월한 컬트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시간 여행, 평행 우주, 운명론 등 복잡한 양자물리학적 개념을 80년대 교외 소년의 성장 드라마와 결합한 이 독창적인 영화는 수많은 해석과 논쟁을 낳으며 열광적인 팬덤을 구축했다. '도니 다코'의 성공 이후, 켈리는 '사우스랜드 테일', '더 박스' 등의 후속작을 내놓았지만, 데뷔작보다 더욱 난해하고 불친절한 서사로 인해 평단과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그의 재능은 그를 천재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대중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 양날의 검이었던 셈이다. 2009년 이후 그는 사실상 연출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결론적으로, '원 히트 원더' 감독들의 이야기는 영화계의 명암을 동시에 보여준다. 예술적 재능이 상업적 성공이나 순탄한 창작 환경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긴 단 한 편의 영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수많은 논쟁을 낳으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단 한 번의 섬광으로, 평생을 바쳐야 할 만큼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