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에 집에서 뭘 볼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찜해두고 시작을 못했던 시리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2020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메시아》였습니다. 10부작을 한 번에 몰아보고 나니, 왜 이 작품이 전 세계 종교계의 반발을 샀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해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까지 넘어가는 한 남자의 여정을 통해, 이 시리즈는 이슬람·유대교·기독교를 모두 건드리는 파격적인 서사를 전개합니다. 제작진은 끝까지 이 남자가 진짜 메시아인지 사기꾼인지 확답을 주지 않으며, 시청자를 극한의 모호함 속에 가둡니다.
종교적 논쟁과 시즌2 무산 배경
《메시아》는 현대판 메시아의 출현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소재를 다룬 서스펜스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알 마시히(메디 데비 분)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 사람들에게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국경에 섰을 때 IS의 공격을 막은 한 달간의 모래폭풍, 총상 입은 아이를 구한 기적, 감옥에서의 유령 같은 탈출 등 초자연적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여기서 서스펜스(suspense)란 관객이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서사 기법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은 10부작 내내 이 긴장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양쪽 해석을 모두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를 곳곳에 배치했다는 겁니다. CIA 요원 에바(미셸 모나한 분)는 알 마시히의 과거를 추적하며 그가 사기꾼일 수 있다는 증거들을 하나씩 제시합니다. 반면 목사 펠릭스는 그와의 만남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뀌며 신앙을 회복합니다.
2020년 넷플릭스가 이 시리즈를 공개한 직후, 전 세계 종교계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특히 중동 지역의 이슬람 단체들과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시리즈가 종교적 인물을 모호하게 그리며, 각 종교의 핵심 교리를 불경하게 다뤘다는 이유였습니다(출처: Deadline). 결국 넷플릭스는 시즌2 제작 계획을 공식 취소했고, 이 작품은 영원히 미완의 시리즈로 남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시즌2가 나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완성했다고 봅니다. 만약 시즌2에서 알 마시히의 정체를 명확히 밝혔다면, 이 작품이 지닌 근원적인 물음 —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은가" — 은 희석됐을 겁니다. 미완으로 끝났기에 더욱 메시아답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과 그들의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알 마시히: 메시아로 불리는 수수께끼의 남자
- 지브릴: 그를 따르다 국경에 남겨진 팔레스타인 소년
- 에바: 그를 추적하는 CIA 요원
- 아비람: 이스라엘 정보국 형사
- 펠릭스: 그를 신앙으로 따르게 된 미국 목사
결말 해석과 시청 후 느낀 점
이 시리즈의 백미는 마지막 10화입니다. 워싱턴 DC에서 벌어지는 대형 집회 장면에서 알 마시히는 수만 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합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고, 그는 심정지 상태에 빠집니다.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시도하지만 소생하지 못하고, 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겨집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영안실은 텅 비어 있고 시신은 사라집니다.
여기서 부활(resurrection)이라는 종교적 내러티브가 등장합니다. 부활이란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가 죽음 이후 다시 살아난 사건을 의미하며, 구원과 영생의 핵심 교리입니다. 《메시아》는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되, 끝까지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시신이 사라진 이유가 정말 부활인지, 아니면 누군가 시신을 훔쳐간 것인지 관객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마지막 장면입니다. 한 양치기 소년이 카메라를 보며 "저 남자가 내게 거짓말을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양치기 소년(shepherd boy)은 성경에서 거짓말쟁이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우화적 인물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증인이 마지막에 등장함으로써, 제작진은 시청자의 확신을 다시 한번 뒤흔듭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까지 모호함을 극대화한 엔딩은 봉준호 감독의 《곡성》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이 시리즈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브릴이라는 캐릭터였습니다. 초반에는 알 마시히를 따르는 순진한 소년으로 그려지지만, 중반 이후 그는 독립적인 서사를 형성하며 또 다른 구원자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특히 국경에 남아 난민들을 구하는 장면에서, 지브릴은 알 마시히 없이도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이 교차 편집은 "메시아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과의 대면 장면에서 알 마시히가 미국의 중동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사들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노골적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쌓아 올린 신비로운 분위기가 이 장면에서 급격히 깨지는 느낌을 받았고, 제작진의 의도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 몰입이 흐트러졌습니다.
이 시리즈를 보고 나니 종교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며칠간 생각하게 됐습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종교 인구 비율은 약 44%로 집계되지만(출처: 통계청), 종교를 갖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이 작품을 보며 신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메시아》는 단순한 종교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이 왜 초월적 존재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깊이 탐구한 철학적 텍스트였습니다.
정리하면, 《메시아》는 완벽하진 않지만 시도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시즌2가 나오지 않은 게 아쉽지만, 오히려 그 미완결성이 이 시리즈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습니다. 종교적 질문에 확답을 원하지 않고, 스스로 해석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주말 하루를 투자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수작입니다.